[기사] "신자들 정혜사 찾으며 행복 했으면" 김찬용·관음행씨 불사지원 앞장 201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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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생활 속 재산 털어 사찰 창건, 몸 불편해도 일요 법회 매번 참석
 

오렌지카운티 정혜사의 김찬용(오른쪽).관음행 부부. 사찰의 크고 작은 일을 마치 자신의 중대사인듯 앞장서 왔다.
오렌지카운티 정혜사의 김찬용(오른쪽).관음행 부부. 사찰의 크고 작은 일을 마치 자신의 중대사인듯 앞장서 왔다.

오렌지카운티 정혜사(주지스님 석타)가 근래 많은 불사를 단행하고 크게 부흥하여 남가주 불교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는 석타스님을 중심으로 뭉친 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후원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선두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부부가 있다. 바로 김찬용(84세).관음행(79세) 노부부다.

김씨는 평안북도 묘향산에 있는 서산대사가 창건하신 보현사 마을의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김씨는 8.15 해방을 맞은 후 1948년 남하하여 인천에서 생활하던 중 6.25 전쟁이 발발했다. 참전용사로 총상을 입어 상이용사로 제대했다. 지금까지도 당시의 총상 휴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편 부인인 관음행 보살은 황해도에서 태어난 이북 출신이다. 6.25 당시 배를 타고 남하하여 인천에 살고 있다가 중매로 김씨를 만났다.

불행하게도 6.25 전쟁이 만든 남북분단으로 인하여 이산가족이 되어 두 사람 모두 그리운 부모 형제들을 북한에 남겨두고 영영 서로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부부는 두고 온 부모 형제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을 점점 부처님께 의지하게 됐다.

그러다가 1976년에 더 나은 삶을 위하여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됐다.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고 거기서 25년 동안 살면서 의류사업으로 생업을 유지했다. 힘든 이민생활 속에서도 오로지 신심으로 그들의 재산을 털어서 그 곳에 사찰을 창건했다.

스님도 없는 절에서 불심을 키우며 10년 동안 신도회장을 역임했다. 고향을 떠난 이민자들의 힘든 생활 속에서 많은 불자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었다. 또 다시 1999년 살아오던 곳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됐다. 이번에는 미국이었다.

정착하게 된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오렌지카운티였다. 이주하면서 한인 사찰을 찾았는데 그 곳이 바로 정혜사였다.

주일마다 출석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오다가 2002년 석타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 후 정혜사 중창불사를 단행하는 데에 큰 시주자로서 이전불사비를 보시했다. 부처님 삼존불상을 조성하여 모시고 사리탑도 세우는데 기여했다.

또 불자들에게 도움이 되리란 생각에서 법요집도 발간하여 배포하는 등 정혜사가 크고 작은 보이지 않는 일에는 항상 부부가 앞장서서 행했다. 크고 작은 여러가지 불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이 부부는 지금도 집에서 새벽 4시면 일어나 불경을 외우고 발원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되돌아 보면 자신의 지나온 발자취 즉 이북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오고 그 곳에서 아르헨티나 다시 이 곳 미국 땅으로 와서 살게 된 것이 모두 부처님 안에서의 인연들의 연속이란 것을 의심할 수가 없다. 부부에게 매일 아침 불경을 부처님 앞에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노 부부의 소망은 남은 여생 동안 정혜사를 좋은 기도도량으로써 꾸준히 가꾸는 일이다. 김씨는 "정혜사를 찾는 많은 신자들이 이 곳에서 부처님의 가피를 입고 행복해지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한다.

미주중앙일보 김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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